정재승의 책으로 읽는 과학 /
겨울 냄새가 공기에 일찌감치 베인 12월이다. 크리스마스 장식이 하나둘씩 거리를 메우고, 덩달아 마음도 어수선해진다. 이 맘 때가 되면 한 해를 정리하느라 마음만 조급해지지만, 그런 가운데에도 나만의 ‘올해의 책’을 뽑는 시간만큼은 즐겁고 행복하다.
올해는 유난히 뇌에 관한 책이 많아서 반가운 순간이 많았는데, ‘마인드 해킹’과 ‘나는 침대에서 내다리를 주웠다’가 서점에 나왔을 때 특히 그랬다. 빼어난 글쓰기로 유명한 올리버 색스의 책들이 올해 들어 쏟아지고 있는데, 그 중 ‘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’(바다출판사)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책이니 당연히 강추다.
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그의 내밀한 삶이 고스란히 담긴 ‘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‘(소소)이다. 그의 글이 주는 매력은 임상 경험이 의학적 성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인데, 이 작품에선 자신이 임상 대상이 되면서 의학적 성찰이 철학적 성찰로 이어진다.
‘마인드 해킹’(황금부엉이)은 더 좋은 제목을 붙였다면 더 많이 팔렸을 책이다. 인간의 정신작용을 간단한 실험과 일상 경험의 예제들로 설명하고 있는 책인데, 만화만큼 재미있다.
폴 에크먼의 ‘얼굴의 심리학’(바다출판사) 또한 독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해 아쉬운 걸작이다.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‘인간의 얼굴이야말로 마음의 창’이라는 사실을 과학의 언어를 통해 이해하게 된다.
제임스 글릭의 ‘천재’(승산)나 사이먼 싱의 ‘빅뱅’(영림카디널), 그리고 질 존스의 ‘빛의 제국’(양문), 존 더비셔의 ‘리만 가설’(승산)은 예비 과학자라면 놓쳐서는 안 될 걸작들이다.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면, 올 겨울 방학은 이 책들 덕분에 아주 따뜻했을 것이다.
지난 해 ‘괴짜경제학’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이라면, 올해는 크리스 앤더슨의 ‘롱테일 경제학’(랜덤하우스)으로 이 겨울을 마무리하면 좋을 것이다. 2004년 <와이어드>에 실린 한 칼럼으로부터 출발한 이 책은 올해 전세계를 강타한 책인데, 좀더 일찍 나왔다면 ‘올해의 책’으로도 주저없이 추천했을 책이다. 이 책을 읽지 않으면 당신은 아직 20세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.
독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해 아쉬운 ‘나만의 컬트’ 중에 거다 리스의 ‘도박’(꿈엔들)도 끼어있다. 이 책은 ‘바다이야기’와 ‘타짜’가 2006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시점에 읽기에 매우 적절한 책이다. 이 책을 읽다보면 처음엔 경마장이나 카지노판에서 볼 수 있는 도박 얘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, 뒷부분으로 갈수록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‘우연과 확률로 점철된 거대한 도박장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. 이 책은 커버 표지에 있는 엉뚱한 글만 없었더라면, 그리고 조그만 더 독자를 고려해 편집을 했더라면, 별로 흠잡을 데 없을 책이다.
데이빗 보더니스의 ‘마이크로 하우스’가 ‘시크릿 하우스’(생각의 나무)라는 이름으로 재출간된 것 역시 기쁜 일이다. 이 책은 내가 대학원때 손에 든 순간 쉬지 않고 마지막 장까지 읽은 나만의 애장서다. 이 책을 읽으면 같은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사이즈를 경험하며 사는 파리와 대장균의 관점을 배우게 된다. 올 겨울도 좋은 과학책들이 많아서 즐거운 계절이다.
정재승/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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